최근에 다시 읽은 세 권의 책을 추천하면서 약간의 소견을 적어 볼려고 합니다. 한자경교수의 '유식무경', '달라이라마의 수행의 단계' '달라이라마의 밀교란 무엇인가'라는 책입니다. '유식무경'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8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범부는 6식과 7식만을 인식하여, 8식의 작용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8식의 작용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무명이라 하는데, 이러한 무명으로 인해 7식인 말나식을 실체인 자아로, 신체와 세상을 실체인 세계로 집착하게 된다고 합니다. 현상으로 변모하는 아뢰야식의 변환인 의타기와 현상을 집착하는 의식과 말나식의 분별인 변계소집은 서로 나선형의 순환을 통해 끊임없는 존재와 인식의 고리를 양산해내는 것입니다. 인연에 의해 발생하는 의타기라는 것을 알아차림으로써 그것이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그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곧 아뢰야식의 변현활동이 그대로 자각될 경우 변현된 현실에 대한 의식과 말나식의 왜곡된 분별이 사라지게 됨을 뜻하는 것입니다. 개체적 의식의 심층에서 작용하는 현상구성의 아뢰야식을 내적으로 자각한다는 것은 곧 그 개체적 의식이 스스로 현상적으로 제한된 개체성을 넘어 보편적인 우주적 마음으로 확대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지관(止觀)의 방식으로 자신의 의식 표층에서부터 심층으로 침잠하여 아뢰야식의 흐름을 내적으로 직관하는 방법으로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달라이라마의 수행의 단계'는 카말라실라의 수습차제에 대하여 설명하는 책입니다. 존재의 진면목(공성)을 착각하는 것이 무지의 뿌리이며 가장 중요한 장애인데, 그 무명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일체지를 성취해야합니다. 일체지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타인에 대한 연민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러한 연민은 보리심을 일어나게하며, 육바라밀의 수행을 통해 법신과 색신을 성취하게 합니다. 연민에 대한 명상의 방법은 괴로워하는 존재들에 대하여 자애로운 마음을 내야하며, 괴로움의 본성을 명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예비적인 수행을 마친 다음에는 세속의 보리심과 승의의 보리심 수행에 진력해야 합니다. 연민으로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세속의 보리심을 일으키면서 수행자는 육바라밀의 보살행을 실천하며, 승의의 보리심에 대한 명상은 공성을 직접적으로 깨달은 출세간의 지혜를 이룸으로써 완성됩니다. 이 지혜는 사마타와 위빠사나가 합일한 삼매의 상태입니다. 사마타는 대상에 집중하는 것을 말하며 몸과 마음이 경안하게 되고, 원하는 대로 상념에 자신의 힘으로 집중할 수 있을 때 사마타는 완성되고 위빠사나 수행을 할 수 있는 준비가 완료된 것입니다. 대상을 포함해서 모든 가탁된 현상들과 인식하는 마음이 비어있음을 관찰하는 것이 위빠사나입니다. 이 위빠사나를 성취한 시점부터는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같이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며 공성에 대한 투철한 통찰력을 얻고 방편을 완성함으로서 무주처열반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달라이라마의 밀교란 무엇인가'는 바라밀다승과 금강승에 대한 차이점을 설명하고, 금강승에 대한 개괄적인 수승함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바라밀다승과 금강승은 다 부처님의 법신에 수순하는 지혜의 도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삼매를 닦아 허공과 같은 공성을 통달하는 것입니다. 바라밀다승에서 소지장을 정화하려면 공성의 지혜 외에도 이타의 원력과 육바라밀다행을 수행의 조력 삼아야합니다. 이러한 수승한 방편을 통해 불과를 증득할 때 성취하게 되는 것이 부처의 색신입니다. 한편 금강승은 원만하고 빠르게 부처의 색신을 성취하는 방편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본존 요가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 수행을 의지하여 본인이 바로 진정한 본존불이라는 부처의 원만한 과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불과는 공성을 관하고 본존의 몸을 관상하는 두가지 수행을 함께 하는 심현 불이의 수행을 통하여 성취되는 것이기 때문에, 두 가지 원만한 수행차제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성불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금강승은 만다라 행법과 관정을 필요로 하는데, 신심은 구족하고 있으나 그릇을 갖추지 못한 제자에게는 오직 만다라에 들어가는 것만을 허락할뿐 그에게 관정을 주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종합적으로 볼 때 바라밀다승과 금강승을 수행하여 얻게 되는 과위는 같은데, 오직 그 성취함에 빠르고 늦은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삼아승지겁을 거치지 않고, 즉신성불을 하려면 오직 금강승의 무상요가부 수행을 통해서만 비로서 완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생성불'에서 '일생'이란 말법시대의 짧은 수명인 '일생'을 가르키는 것이 아닙니다. 금강승의 수행자는 본존요가를 수행하여 진언 등의 방편을 지속한 공덕으로 자신의 일생을 몇 겁까지 연장할 수 있는 신통력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몇 겁이고 장수를 성취한 일생을 가지고 먼저 금강승의 하삼부를 의지해 수행한 다음, 다시 무상요가부의 수행에 의지하여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금강승의 무상요가부는 욕망과 번뇌를 수행의 방편으로 쓸 수 있는 최상근기 중생을 위한 설법이며, 성교를 이용한 쌍신수행이 있습니다. 또한 살아 있을때 수행에 뜻을 두고 불법을 향한 마음을 완전히 성숙시킨 다음 임종 뒤 중음의 상태에서 영혼을 해탈케하는 바르도 해탈법도 있으며, 아미타불의 가피력과 제자의 신심, 스승의 법력이 하나가 되어 의식을 옮긴 다음 쉽게 극락정토에 나서 성불하는 포와수행법도 있습니다.
다양한 중생의 근기에 따라 소승, 대승, 금강승의 설법으로 나누어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신 불법은 아집과 법집에 의한 무명을 반야와 방편으로 치유함으로써 무주처열반에 이르게 하여, 법신과 색신을 성취하게 합니다. 근기에 관계없이 인간의 행복은 자신을 중심으로하는 삶의 방식을 타인을 중심으로 하는 삶의 방식으로 전환함으로써 시작될 수 있음을 불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옴마니반메훔 옴아훔바즈라구루파드마싯디훔 |